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6.6원 오른 1432.4원에 거래되고 있다. 뉴스1


최근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자, 주변에서 환율이나 가상화폐에 관해 물어 오는 경우가 있다. 경제·산업 분야 취재를 오래 한 경력을 믿고 그럴듯한 답변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면서도, 궁금증을 해결해 줄 실력 부족 탓에 대충 선문답을 던진 후 화제를 돌리게 된다. 이런 자신이 한심해지는 순간, 세계 최고 경제 전문가가 지난 5월 발표한 신간이 국내 번역돼 나왔으니 읽지 않을 수 없다.
신간 ‘달러 이후의 질서’의 저자 케네스 로고프는 국제박tv
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현재는 미 하버드대 국제경제학 교수로 국제경제학 분야 최고수다. 책은커녕 이 서평도 끝까지 읽기 힘든 바쁜 사람들을 위해 책 내용부터 요약한다. “달러는 앞으로도 최소한 몇 십 년은 지배적 통화로 남겠지만, 그 위상은 몇 단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도권 경제 영역에서는 위안과 유로가 달러의 영역을 침식할 것10월테마주
이고,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지하경제에서는 가상화폐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달러 점유율이 줄면, 미국 장기채권 금리가 상승(채권 가격 하락)하고, 미국이 금융 제재를 하려해도 그 효과가 점점 약화할 것이다.” 이는 로고프가 지난 5월 출간 직후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따온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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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한국어판에는 8월에 저자가 한국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서문이 붙어 있다. 그 서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의 저술이 지난해 11월에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의 관세 정책과 대중 무역전쟁이 유진투자증권 주식
일으킬 결과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한국어판 독자만 읽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세계 각국을 다니며 직접 목격한 장면과 함께 얘기를 나눈 인물들의 일화를 흥미롭게 섞어가며 복잡한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는 재치 있는 글솜씨는 ‘경제학 책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뜨린다.
로고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출간된 책 ‘이번엔 다럭키세븐
르다’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는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기 직전인 그해 8월, 로고프는 싱가포르 학술대회에 참석해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으며, 대형 투자은행 중 하나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로고프는 경제학자를 통틀어 격앙된 발언을 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인물이기 때문에, 그 발언이 더 무시무시하다”고 적었다.
경제나 금융 분야에는 위기론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로고프는 그와 다른 합리적 인물이니 그가 걱정을 한다면 진짜 걱정할 상황이다. 로고프는 공화당 민주당 중 누가 정권을 잡아도 미 달러 패권의 약화는 피할 수 없다고 본다. 37조 달러를 넘어선 미국 국가부채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2차대전 이후 환율 체제를 파괴해 국가부채를 떨어냈듯이, 또 한 번 채무 불이행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자,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로 임명된 트럼프의 측근 스티븐 마이런은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로 둘러싸인 트럼프 2기 정부가 펼치는 외교 경제 정책들은 미 달러 패권의 추락을 더 가속화할 것이라며, 향후 4, 5년 내 어쩌면 더 빨리 채무 불이행 방안이 대두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달러 이후의 질서·케네스 로고프 지음·노승영 옮김· 윌북 발행·456쪽·2만9,800원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기 전에 외화보유액의 70% 이상을 미 달러화 자산으로 보유한 한국은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중국이나 유럽연합이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지금부터 무역 비중에 맞춰 보유 자산을 다양화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국 정부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국제경제학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